※ 본 글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대량 포함하고 있습니다.
※ 본 글을 작성할 동기를 부여해준 루리웹의 엄디저트의 정리 글에 감사를 표합니다.
“에반게리온은 나의 삶 그 자체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이 작품 안에 담았습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 안에서,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바꾸어 말해, 우리는 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각하여,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답’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작품을 보고 ‘에바의 모든 것’이라는 매뉴얼을 원하기도 하겠죠. 그러나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답을 찾아야 하니까요.” (New Type Addicts #43 11/1996)
-안노 히데아키-
-출처 : [에반게리온] 0. 우리들은 무엇을 해석하려 했는가? 루리웹 엄디저트 -
2013년 일본보다 약 5개월 정도 늦게 에반게리온 Q(이하 “Q”)가 한국에서 개봉합니다. 그 충격적인 전개에 많은 관객들이 실망하고 또 다시 사람을 낚는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감독의 숭악함에 기겁하게 됩니다.
[적어도 표지는 그렇게 숭악해 보이지 않는다]
본 애니메이션은 제 블로그의 전신인 홈페이지 시절 첫 번째 리뷰 작품으로 홈페이지 리뉴얼과 더불어 에피소드별로 소개를 하게 변모한 시점에서 다시 리뷰해 변화의 실험 작이 되었던 만큼 애정 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론 처음 접한 일본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블로그에 백업된 이전 리뷰들은 저의 주관적인 해석은 배제된 스토리 위주의 훑어보기에 가까운데요. Q를 본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야 제 주관적 해석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디저트님의 분석 글+개인적인 관점을 이어주는 Q의 개봉 때문이기도 하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에반게리온 시리즈 전체를 “삐뚤어진 개똥철학”이라고 오래 전부터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개똥철학에는 나름의 가치가 담겨져 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눈으로 보자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개똥철학”이라는 점입니다. 고쳐서 쉽게 이야기하면 보는 이의 마음대로 느끼는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년 작 TV판을 지칭, 이하 ‘에바’)은 등장인물들부터 정상적인 인물이 거의 없습니다. 비교적 정상적인 인물의 등장은 극이 실제로 있을 것 같아 보이게 하는 극의 분위기를 돋게 하는 정도지요.(예를 들자면 “히카리의 짝사랑”) 하지만 그런 인물들의 비중은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등장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극의 중반이후로 시청자들은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 중 하나에게 감정을 이입했을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까요.
[정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렇게 비정상적인 인물들에게 맞춰진 나만이 느낀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한 개씩 심어 놓고 그 외의 감정들은 극의 여기저기에 알아채지 못하게 교묘하게 복선과 함께 그리고 본적은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잘게 썰어 극의 여기저기에 흩어 놓습니다.(이러한 기법은 심지어 오프닝에서도 쓰인다.) 눈에 드러나는 감정들마저 이뤄지지 않거나 비극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게 마무리 지음으로서 각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극을 진행해갑니다
(예를 들자면 “아스카와 카지의 관계”, “미사토와 카지의 관계”, “겐도와 레이코박사의 관계”, “겐도와 유이의 사랑” 등 표면적인 원한 관계 및 애정관계는 결국 비극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에 대한 분석은 윗 링크, 엄디저트님의 글을 참고하도록 하자!]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카리 신지(이하 “신지”)의 존재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인간에 대한 혐오”, “누군가 자신을 이끌고 나가주었으면 하는 심약함”, “세상을 리셋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비정상적 캐릭터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캐릭터마다 투영된 자신의 모습이 모두의 공통적인 시선인 신지에게 모여지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 역시 우리와 똑같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End of Evangelion(1997년 작, 이하 “EOE”)은 TV판 25~26화의 중간 시점에서 이러한 신지의 고민을 구체화시키고 조금 더 많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날려주어 신지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서드 임팩트가 일어나게 되고 거기에서 허무함과 공포를 느끼고 다시 되돌리려 합니다. 그렇게 아스카가 돌아오고 신지는 자신 선택을 강요한 존재의 대표 격인 자신과 동년배이자 매력적인 이성인 아스카에게 원망을 표현하지만 아스카는 그것을 위로하면서도 기분 나쁘다고 표현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신지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이 기분 나쁘다(불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원망과 위로, 연민이 동반된 EOE의 마지막 장면]
결국 신지는 최종화에 이르러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각자의 삶과 인생, 비꽈서 개똥철학의 다른 예를 이해하면서 에반게리온의 긴 이야기는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이후 약 14(+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에반게리온 Q가 개봉합니다.(일본기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하 “신 에바”)의 시작인 에반게리온 서(이하 ‘서’)는 작품 내에서 이미 지난 서드 임팩트의 징후를 보이는 복선들이 깔려있습니다.(흔히 말하는 “루프물”)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붉은 바다지요. 이것을 성공적인 서드 임팩트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신지의 선택이었고 실제로 서에서 그는 한층 성숙해졌습니다.(루프물이라 본인은 자각이 없지만 아니 사실 루프물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심약하던 그에게 “근성과 기백”이 생긴 것이지요. 마치 에바 시절보다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신지는 에반게리온 파 (이하 “파”)에서 열혈 소년으로 변해 자신의 의지로 서드 임팩트를 일으키게 됩니다. 아야나미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망설이지 않고 전진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Q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지만 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EOE의 아스카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신, 구 에바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서드 임팩트 직 후의 사람들의 반응이다.]
자신과 또래의 사람(에반게리온의 파일럿)들은 전부 성장하지 않고 자기 자신도 성장하지 않은 체로 14년 뒤를 맞이하는 신지, 물리적으로도 14(+1)년 정도 지난 우리처럼 모든 것이 알 수 없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14년 동안 성장한 만큼 책임감을 져야하는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나와 같아 보였던 또래의 사람들도 외관과 다르게 정신적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바의 저주라는 이름하에 아스카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외관이다. 하지만 내면은 엄청난 성장을 했다]
신지도 그에 뒤질세라 자신의 의지로 저지른 임팩트를 카오루라는 든든한 친구와 함께 헤쳐나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조급함이 친구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다시 생각지도 못한 폐를 끼치게 됩니다. 하지만 직전(서 & 파)과는 달리 누구에게도 원망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결과를 갖고 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에바 11화처럼 아스카, 신지, 그리고 레이는 길을 찾아 나섭니다.
삐뚤어진 이란 표현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전체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시선입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고뇌의 중심에 인간이 있고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라는 것을 인간의 태초의 시작점인 아담과 종교 그리고 철학적 내용들을 버무려 굉장히 상업적으로 재창조했다는 데에서 오는 찬사이자 반감,
개똥철학 이란 삐뚤어진 표현방법으로 인해 겉으로 보이는 허세성과 이미지 혹은 메시지 전달을 위해 반복되는 같은 구도로 인한 세뇌, 그와 함께 나오는 지나칠 정도의 각자 삶에 대한 진지함과 해석의 자유로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관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듯한 마리의 행동, 대사도 굉장히 흥미롭다]
에바와 EOE시리즈가 강요에 의해 자신을 위한 서드 임팩트로 타인에 대한 소중함과 이해의 일깨움을 다뤘다면 신 에바는 자신의 정당성을 위한 서드 임팩트로 인해 피해 입는 다른 이들에 대한 소중함과 이해 그리고 책임감까지 덧붙이는 “정신적 성장, 하지만 삶이라는 개똥철학은 끝나지 않는다.”는 안노 감독의 안부인사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가올 에반게리온 : Ⅱ에서 비춰줄 삐뚤어진 개똥철학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삐뚤어진 개똥철학 덕분에 에바의 설정이 때로는 충돌을 일으키고 공인 받은 설정의 해석마저 뒤틀어버리는 불친절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에반게리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설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레 겁먹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설정들(에반게리온이란? 인류보완계획이란? 그들이 지칭하는 현상들의 이름의 의미는?)은 삶이라는 복잡함을 대신하고 개똥철학은 각자의 신념이라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Q를 보면서 느끼는 다음 작에 대한 불안함과 기대가 알 수 없는 자신의 내일과 미래가 겹쳐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 에반게리온 항목으로 이동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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